“명상의 세계’로 내딛는 진지한 첫걸음을 위한 ‘즐거운 명상 길라잡이’각 종교에서의 명상의 역사와 명상법 등 <명상으로 가는 모든 길>이 있다.
명상은 한가한 사람의 정신적 유희가 아니다. 명상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고양시키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이상을 '지금, 바로 여기'에 실현시킬 수도 있다. <명상의 세계>는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삶이 삶 스스로를 깨우치는 방법인 명상의 첫걸음을 내딛게 하는 입문서로서, 불교?도교?유교?기독교?이슬람교 등 각 종교에서의 명상의 역사와 그들 명상법의 핵심, 명상의 고향인 인도의 명상과 요가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열중하는 것이 명상이다
요즈음은 조깅이 유행이어서 매일 아침 저녁에 달리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때에도 조깅이 몸에 좋다고 하니 뛰어야겠다고 억지로 생각하거나, 어디서 어디까지 뛰겠노라고 미리 결정하고 뛰면 마음에 부담감을 가지게 되어 힘이 더 든다. 이것은 그 거리나 시간이 객관화되어, 주관과 갈등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또한 건강에 좋다는 생각이 객관화됨으로써 이원화된 행동이 되기 때문에 무리가 오는 것이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발걸음에 정신을 집중시켜서 그저 뛰고 싶어서 뛰고, 재미있고 기분 좋아서 뛴다면 그 순일한 생각 때문에 다른 잡념이 들어오지 못한다. 이렇게 하려면 발걸음에 맞춰서 어떤 ‘다라니’를 외우거나 진언을 염송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그것이 나의 온 마음을 점유하므로 다른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시간도 초월하고 너와 내가 없어지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복잡한 거리를 걸을 때에 오직 한걸음 한걸음 동작에 정신을 집중하면, 그 보행이 바로 명상이 되는 것이다.
명상 속에서 걷는 보행이나 뜀뛰기는 발의 움직임과 걷는 내가 완전히 하나되는 것이다. 오직 걷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인식하는 것과 평온한 만족만이 하나되어 있을 뿐이다.
무념무상無念無想 속에 일체가 영위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명상의 대상은 어떤 특정한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 속의 모든 것이 다 대상이 되면서 그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도시가 시끄러워서 산 속으로 들어가거나, 세상이 시끄러워서 집을 나가 도를 닦겠다고 하는 것은 소극적인 태도다. 만일 산 속으로 피해가면, 산 속의 새소리나 바람소리가 시끄러워질 것이며, 세상이 싫다면 자기 몸이 싫어지고 말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 본문 중에서
<명상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나와 하나이다>
- 요가와 명상
명상을 통한 최고의 경지, 이른바 삼매에 이르면 우주와 내가 하나임을 자각하게 되고, 자기 마음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다. 즉 우주가 내 속에 있고, 내가 우주 속에 있다고 자각하는 것이므로 드디어는 내 속에서 일체를 보고, 일체 속에서 나를 봄으로써 더없는 행복감을 갖게 된다. 집중된 생각은 인생의 돌파구를 열어준다. 생각이 신념을 낳고, 신념이 생기면 그대로 되는 것이다.
- 불교와 명상
불교의 명상은 선禪으로 대표된다. 인도에서는 선禪과 요가를 같은 것으로 여겨서, 요가라고 하면 ‘선’을 포함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불교에서는 부처가 성도했을 때에 취한 수행방법을 선정禪定이라고 하여 일반적인 요가와는 구별하고 있다.
고苦나 낙樂의 두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의 생활방법이나 수행방법이 모두 선정이라고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중도적인 수행이 선정이라면, 격렬한 수행방법은 요가이다. 선이라는 것은 요컨대 마음을 어떤 대상에 매이지 않게 하여 모든 사물을 올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행하는 사람이 되는 수행이다. 마음의 고요함과 지혜를 같이 닦는 것이 불교의 선이다.
- 도교와 유교의 명상
자연 그대로인 상태에서는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정신이 집중되어 텅 빈 것처럼 되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이것이 도道다. 그러므로 도道 그대로의 상태에 있는 것, 텅 빈 상태가 되는 것, 신神과 기氣가 합일한 망아忘我의 상태에 이르러서 비로소 마음이 한결같이 고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요가 삼매의 세계요, 불교 적정의 세계이다.
유교에서는 자기 자신을 이겨내라고 하여 극기克己를 강조한다. 자기를 이긴다는 것은 참된 자기,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겨야 할 대상은 그릇된 자기요, 이긴 다음에 나타나는 것은 참되고 올바른 자기다. 우리의 마음은 이러한 것이니, 항상 마음을 텅 비게 하고 맑게 해야 한다. 이것이 유교의 명상이다. 거울 앞에서 사물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쳐지듯이, 우리의 마음도 텅 빈 상태, 즉 맑은 거울 같은 상태에서는 사물의 모습이 그대로 비치게 된다. 마음이 항상 맑고 비어 있으면 때가 묻을 수가 없고,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다. 이와 같이 마음을 비우는 노력이 명상이다.
-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명상
기독교의 명상은 자아 속에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 불교의 명상이 자아를 부정하여 텅 빈 상태로 만드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기독교 명상에서는 신과의 합일이 최고의 목표이다. 참된 기도는 인간 중심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이 아니고, 나라고 하는 인간이 무無로 돌아가서 비로소 신의 경륜으로 이루어져야 가장 높은 단계의 참된 기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신과의 대화다’라고도 말한다. 기도는 나의 모든 정성과 모든 있는 것으로, 신 앞에 그저 의지한 몸이 되고, 던져버린 마음이 되었을 때에 신의 사랑의 손이 다가온다고 할 것이다.
수피즘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신비주의적인 교파. 신에 대한 한결같은 묵상은 자기 자신의 삶을 알게 하고, 가장 순수한 정신세계로 돌아오게 하며, 아름다운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므로, 수피의 메시지는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정신적인 삶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요한 명상을 통해 신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차례
- 머리말
[ 제1장 / 명상이란 무엇인가 ]
1. 명상의 뜻
2. 명상의 역사
[ 제2장 / 요가와 명상 ]
1. 요가 수련의 필수 요건
2. 명상 수련 방법
3. 생활 속의 요가 명상
[ 제3장 / 불교의 명상 ]
1. 선이란
2. 선의 세계
3. 선 수행의 실제
[ 제4장 / 도교와 유교의 명상 ]
1. 도교의 명상
2. 유교의 명상
[ 제5장 /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명상 ]
1. 명상에 대한 서구인의 정의와 이해
2. 기독교의 명상
3. 이슬람교의 명상
[ 제6장 / 현대의 심리요법과 명상 ]
1. 자율훈련과 명상
2. 자기암시훈련
3. 바이오피드백시스템과 명상
4. 초월명상법 TM
[ 제7장 / 명상의 기적 ]
1. 정신적인 면에 나타나는 기적
2. 육체적인 면에 나타나는 기적
3. 초인간적 능력
[ 제8장 / 명상의 고향, 인도 ]
1. 인도문명과 그 배경
2. 인도의 정신문명과 명상생활
3. 인도의 철학과 종교
4. 인도문화와 불교
지은이 정태혁
1922년 경기도 파주 출생. 1961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요가를 도입한 이래 오늘날까지 요가의 지도와 수행에 진력하고 있다. 동방불교대학 학장, 한국요가학회·한국정토학회 회장, 한국요가지도자협회 도정, 사회복지 법인 연꽃마을 노인문제 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 현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지은 책으로는 『인도철학』 『인도종교 철학사』 『밀교의 세계』 『금강대승밀교총설』 『붓다의 호흡과 명상』 『요가수트라』『요가 우파니샤드』 외 여러 권이 있다.
“명상의 세계’로 내딛는 진지한 첫걸음을 위한 ‘즐거운 명상 길라잡이’각 종교에서의 명상의 역사와 명상법 등 <명상으로 가는 모든 길>이 있다.
명상은 한가한 사람의 정신적 유희가 아니다. 명상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고양시키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이상을 '지금, 바로 여기'에 실현시킬 수도 있다. <명상의 세계>는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삶이 삶 스스로를 깨우치는 방법인 명상의 첫걸음을 내딛게 하는 입문서로서, 불교?도교?유교?기독교?이슬람교 등 각 종교에서의 명상의 역사와 그들 명상법의 핵심, 명상의 고향인 인도의 명상과 요가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열중하는 것이 명상이다
요즈음은 조깅이 유행이어서 매일 아침 저녁에 달리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때에도 조깅이 몸에 좋다고 하니 뛰어야겠다고 억지로 생각하거나, 어디서 어디까지 뛰겠노라고 미리 결정하고 뛰면 마음에 부담감을 가지게 되어 힘이 더 든다. 이것은 그 거리나 시간이 객관화되어, 주관과 갈등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또한 건강에 좋다는 생각이 객관화됨으로써 이원화된 행동이 되기 때문에 무리가 오는 것이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발걸음에 정신을 집중시켜서 그저 뛰고 싶어서 뛰고, 재미있고 기분 좋아서 뛴다면 그 순일한 생각 때문에 다른 잡념이 들어오지 못한다. 이렇게 하려면 발걸음에 맞춰서 어떤 ‘다라니’를 외우거나 진언을 염송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그것이 나의 온 마음을 점유하므로 다른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시간도 초월하고 너와 내가 없어지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복잡한 거리를 걸을 때에 오직 한걸음 한걸음 동작에 정신을 집중하면, 그 보행이 바로 명상이 되는 것이다.
명상 속에서 걷는 보행이나 뜀뛰기는 발의 움직임과 걷는 내가 완전히 하나되는 것이다. 오직 걷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인식하는 것과 평온한 만족만이 하나되어 있을 뿐이다.
무념무상無念無想 속에 일체가 영위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명상의 대상은 어떤 특정한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 속의 모든 것이 다 대상이 되면서 그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도시가 시끄러워서 산 속으로 들어가거나, 세상이 시끄러워서 집을 나가 도를 닦겠다고 하는 것은 소극적인 태도다. 만일 산 속으로 피해가면, 산 속의 새소리나 바람소리가 시끄러워질 것이며, 세상이 싫다면 자기 몸이 싫어지고 말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 본문 중에서
<명상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나와 하나이다>
- 요가와 명상
명상을 통한 최고의 경지, 이른바 삼매에 이르면 우주와 내가 하나임을 자각하게 되고, 자기 마음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다. 즉 우주가 내 속에 있고, 내가 우주 속에 있다고 자각하는 것이므로 드디어는 내 속에서 일체를 보고, 일체 속에서 나를 봄으로써 더없는 행복감을 갖게 된다. 집중된 생각은 인생의 돌파구를 열어준다. 생각이 신념을 낳고, 신념이 생기면 그대로 되는 것이다.
- 불교와 명상
불교의 명상은 선禪으로 대표된다. 인도에서는 선禪과 요가를 같은 것으로 여겨서, 요가라고 하면 ‘선’을 포함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불교에서는 부처가 성도했을 때에 취한 수행방법을 선정禪定이라고 하여 일반적인 요가와는 구별하고 있다.
고苦나 낙樂의 두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의 생활방법이나 수행방법이 모두 선정이라고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중도적인 수행이 선정이라면, 격렬한 수행방법은 요가이다. 선이라는 것은 요컨대 마음을 어떤 대상에 매이지 않게 하여 모든 사물을 올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행하는 사람이 되는 수행이다. 마음의 고요함과 지혜를 같이 닦는 것이 불교의 선이다.
- 도교와 유교의 명상
자연 그대로인 상태에서는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정신이 집중되어 텅 빈 것처럼 되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이것이 도道다. 그러므로 도道 그대로의 상태에 있는 것, 텅 빈 상태가 되는 것, 신神과 기氣가 합일한 망아忘我의 상태에 이르러서 비로소 마음이 한결같이 고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요가 삼매의 세계요, 불교 적정의 세계이다.
유교에서는 자기 자신을 이겨내라고 하여 극기克己를 강조한다. 자기를 이긴다는 것은 참된 자기,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겨야 할 대상은 그릇된 자기요, 이긴 다음에 나타나는 것은 참되고 올바른 자기다. 우리의 마음은 이러한 것이니, 항상 마음을 텅 비게 하고 맑게 해야 한다. 이것이 유교의 명상이다. 거울 앞에서 사물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쳐지듯이, 우리의 마음도 텅 빈 상태, 즉 맑은 거울 같은 상태에서는 사물의 모습이 그대로 비치게 된다. 마음이 항상 맑고 비어 있으면 때가 묻을 수가 없고,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다. 이와 같이 마음을 비우는 노력이 명상이다.
-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명상
기독교의 명상은 자아 속에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 불교의 명상이 자아를 부정하여 텅 빈 상태로 만드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기독교 명상에서는 신과의 합일이 최고의 목표이다. 참된 기도는 인간 중심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이 아니고, 나라고 하는 인간이 무無로 돌아가서 비로소 신의 경륜으로 이루어져야 가장 높은 단계의 참된 기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신과의 대화다’라고도 말한다. 기도는 나의 모든 정성과 모든 있는 것으로, 신 앞에 그저 의지한 몸이 되고, 던져버린 마음이 되었을 때에 신의 사랑의 손이 다가온다고 할 것이다.
수피즘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신비주의적인 교파. 신에 대한 한결같은 묵상은 자기 자신의 삶을 알게 하고, 가장 순수한 정신세계로 돌아오게 하며, 아름다운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므로, 수피의 메시지는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정신적인 삶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요한 명상을 통해 신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차례
- 머리말
[ 제1장 / 명상이란 무엇인가 ]
1. 명상의 뜻
2. 명상의 역사
[ 제2장 / 요가와 명상 ]
1. 요가 수련의 필수 요건
2. 명상 수련 방법
3. 생활 속의 요가 명상
[ 제3장 / 불교의 명상 ]
1. 선이란
2. 선의 세계
3. 선 수행의 실제
[ 제4장 / 도교와 유교의 명상 ]
1. 도교의 명상
2. 유교의 명상
[ 제5장 /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명상 ]
1. 명상에 대한 서구인의 정의와 이해
2. 기독교의 명상
3. 이슬람교의 명상
[ 제6장 / 현대의 심리요법과 명상 ]
1. 자율훈련과 명상
2. 자기암시훈련
3. 바이오피드백시스템과 명상
4. 초월명상법 TM
[ 제7장 / 명상의 기적 ]
1. 정신적인 면에 나타나는 기적
2. 육체적인 면에 나타나는 기적
3. 초인간적 능력
[ 제8장 / 명상의 고향, 인도 ]
1. 인도문명과 그 배경
2. 인도의 정신문명과 명상생활
3. 인도의 철학과 종교
4. 인도문화와 불교
지은이 정태혁
1922년 경기도 파주 출생. 1961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요가를 도입한 이래 오늘날까지 요가의 지도와 수행에 진력하고 있다. 동방불교대학 학장, 한국요가학회·한국정토학회 회장, 한국요가지도자협회 도정, 사회복지 법인 연꽃마을 노인문제 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 현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지은 책으로는 『인도철학』 『인도종교 철학사』 『밀교의 세계』 『금강대승밀교총설』 『붓다의 호흡과 명상』 『요가수트라』『요가 우파니샤드』 외 여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