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사계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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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옮긴이)  
이대일 지음
카테고리
비소설
펴낸날
2005.12.01
쪽수
180p
가격
28,000원



흑백사진, 그 흙빛에 담은 한국의 사계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이 자아내는 이야기들


자연은 하늘이 빚어내는 놀라운 예술이다. 이것은 또한 우주의 위대한 경전이다. 단 한 순간의 멈춤도 없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자연은 천변만화하며 한도 끝도 없는 그림을 그려낸다. 자연은, 순간순간의 것들이 순간적으로 만나 그 자태를 드러내는 하늘의 시(詩)이자 우주의 노래다. 자연은, 존재의 세계로 나선 만물이 서로 어우러지며 불러대는 하늘에 대한 찬가이며 생멸의 혼융으로 빚어지는 우주의 얼굴이다.
만물은 실재가 아닌 현상이며 구름이나 안개처럼 서로 다른 시차를 두고 무한한 다양성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내는 하나의 리듬이다. 이 때문에 자연은 우주의 숨결이자 하늘의 춤이 된다. 더구나 이것은 우리 생명의 모태이면서 생명성 자체이기도 하다. 만물은 진정 살아 숨쉬고 있는 현상이며 동시에 서로를 향해 작용과 반작용을 지속해내는 독특한 기(氣) 덩어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은 단순한 풍경이기보다 의미로운 언어가 된다. 이것은 자연이 언어와 동일한 양태임을 뜻한다. 우리가 특정 사회 이론에 매력을 느끼고 공감한다는 것은 특정 시?공간의 인간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방식에 공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사회현상은 우리의 의식 속에 보다 구체적이며 명료한 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여기에서 이론은 실제가 아니라 실제를 이해하는 하나의 준거틀이 된다.
마찬가지로 자연은 끊임없이 요동하면서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어떤 의미를 드러낸다. 따라서 자연풍경은 우리로 하여금 그 이면의 세계를 어림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현상적 실체가 된다. 이것은 언어로 쉽게 가닥 잡히지 않는 내밀한 세계로서 우리에게 부단히 그 무언가를 일러온다. 이 때문에 자연은 고정된 실체로서의 정체된 이미지가 아니라 그 무언가를 암시하고 상징해내는 매개체가 된다. 자연은, 그리고 자연풍경은 우리 인간에게 자연 그 자체로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체가 된다.
자연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은 유동체라는 점에서, 그리고 부단히 변화해나가며 자신의 분위기를 계속 바꿔낸다는 점에서 정녕 신비롭고 경이로운 현상이다. 천지간의 꽃들이 훈풍 따라 한꺼번에 피어오르는가 하면 바람 한 점 없는 햇살 투명한 어느 날 갑자기 단풍잎이 동시에 떨어져내리기도 한다. 도저히 상상이 불가능한, 수많은 자연의 얘기들이 도처에서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며 말을 건네온다.
자연풍경을 주목해보는 기쁨은 바로, 스스로 생겨난 것들(自然)이 서로 만남과 이별을 거듭해가며 오묘한 조화의 세계를 내보이는 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화 속에 의미심장한 세계가 깃들어 있음에서일 것이다. 자연은 세계를 열어 보인다. 변화무쌍하여 다양하고도 광대한 세계.
자연풍경의 세계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세계다. 돌이나 나무에서 하늘과 땅, 안개와 구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빛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만물이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그 분위기를 달리하며 스스로를 드러낸다.
이것은 다시 정서의 세계다. 명랑하고 쾌활해 보이는 분위기에서 음울하고 침침한 무드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천태만상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 따라서 특정 자연풍경에 대한 주목이란 저마다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특정 현상에 대한 관심이자 여기에 깃들어 있는 미묘한 뉘앙스의 정서성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이다.
나아가 이것은 인류사를 아득히 넘어서는 과거에 대한 주목이며 동시에 현재와 미래에 대한 주목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주목이며 자연과 우리 자신의 내면에 대한 주목이기도 하다.
1990년대를 경과하면서 급속히 깨져나가기 시작한 한국의 자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속속들이 파헤쳐지고 곳곳에 아스팔트도로가 이중 삼중으로 깔려드는가 하면 산간오지까지 승용차가 들어설 수 있게 된 한국의 자연. 정겹기만 하던 흙길이 사라지고 개구리나 메뚜기가 사라진 자연. 한가로움을 지워내는 포클레인의 손톱이 도처에서 사나운 자연. 그래서 아련한 그리움마저 흐려져가는 한국의 자연.
쫓겨나고 박제화되어가는 풍경을 찾아다니다가 문득문득 만나보게 된 시간과 공간. 순도를 잃지 않은 햇살과 버무려져 아름답게 타오르는 풍경 앞에서 나는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져보고자 손을 내밀며 자연을 찬미하는 노래를 불러보았다.


지은이 이대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및 동 대학원 디자인과를 졸업했다. 디자인 전문지 『포름』의 편집인을 역임했고, 1993년과 2002년 그리고 2005년에 걸쳐 세 번의 개인전(사진)을 가졌다.
지은 책으로 시집 『풀씨들』외에 인도,네팔 기행문『길』, 사진집 『길』, 장편소설『회색스웨터의 회상』, 수필집『촛불 속의 풍경』, 박수근 평전『사랑하다, 기다리다, 나목이 되다』, 영상시집『빈 뜨락 위로 오는 바람』, 사진에세이집 『꿈꾸는 자작나무』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조형의 원리』를 비롯하여『초현실주의 미술』,『상징주의 미술』,『야수파』,『근대건축과 디자인』,『공예가의길』,『바우하우스』등이 있다. 현재 명지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